다니엘 리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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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니엘 리오스는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동한 야구 선수이다. 1997년 뉴욕 양키스에서 데뷔하여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2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KBO 리그에 진출, 2004년과 2007년 다승왕, 2007년 MVP를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5년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고, 2007년에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8년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활동했으나 금지 약물 복용으로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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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오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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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대니 리오스 |
출생일 | 1972년 11월 11일 |
출생지 | 스페인 마드리드 |
포지션 | 투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경력 |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97년 5월 30일 |
데뷔 팀 | 뉴욕 양키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1998년 |
최종 팀 | 캔자스시티 로열스 |
승-패 기록 | 0승 1패 |
평균 자책점 | 9.31 |
탈삼진 | 7 |
한국 프로 야구 (KBO) 경력 | |
데뷔 리그 | KBO |
데뷔 팀 | KIA 타이거즈 |
데뷔 연도 | 2002년 |
최종 리그 | KBO |
최종 팀 | 두산 베어스 |
최종 연도 | 2007년 |
승-패 기록 | 90승 59패 |
평균 자책점 | 3.01 |
탈삼진 | 807 |
일본 프로 야구 (NPB) 경력 | |
데뷔 리그 | NPB |
데뷔일 | 2008년 4월 1일 |
데뷔 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최종 리그 | NPB |
최종일 | 2008년 |
최종 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승-패 기록 | 2승 7패 |
평균 자책점 | 5.46 |
탈삼진 | 37 |
선수 경력 | |
팀 | 뉴욕 양키스 (199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8년) KIA 타이거즈 (2002년 ~ 2005년) 두산 베어스 (2005년 ~ 2007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8년) 마이애미 대학교 뉴어크 베어스 (2000년) 신시내티 레즈 (2000년 ~ 2001년) 라구나 유니온 코튼파머스 (2000년, 2001년) |
수상 내역 | |
주요 수상 | KBO 다승왕 2회 (2004년, 2007년) KBO 탈삼진 1위 (2005년) KBO 평균자책점 1위 (2007년) KBO 골든 글러브 (2007년) KBO MVP (2007년) |
2. 메이저 리그 시절
1997년 뉴욕 양키스 선수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해 2경기 출장, 승패 없이 5실점, 삼진 1개로 평균 자책 19.29를 기록했다. 이듬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팀을 옮겼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리오스는 1993년 뉴욕 양키스와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했다. 그는 GCL 양키스에서 데뷔하여 24경기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3.52, 6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는 당시 선발 투수였던 마리아노 리베라가 잠시 활약했던 팀의 마무리 투수였다. 1994년, 리오스는 풀 시즌으로 처음 활약하며 그린스보로 배츠에서 37경기 3승 2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했고, 탬파 양키스에서는 10.1이닝 동안 무자책점(총 2실점)을 기록하며 9경기에서 2세이브를 올렸다. 리오스의 통산 평균자책점 0.70은 그해 마이너 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기록 중 하나였을 것이다.
리오스는 1995년에도 눈부신 활약을 이어갔다. 탬파에서 그는 평균자책점 2.00, 0승 4패, 24세이브, 67.1이닝 72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는 53경기에 출전하여 플로리다 주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리오스는 1996년 메이저 리그 진입을 눈앞에 두었다. 그는 노리치 내비게이터스에서 3승 1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를 기록했고, 콜럼버스 클리퍼스에서 24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그를 양키스 팜 시스템에서 9위 유망주로 평가했는데, 이는 같은 우완 투수 토니 아르마스 주니어보다 한 단계 앞선 순위였다.
리오스는 1997년 대부분의 시간을 콜럼버스에서 보냈는데, 이전 3년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58경기에서 7승 4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3.08을 기록했다. 그는 인터내셔널 리그 선두를 달리던 팀 동료 데일 폴리보다 4경기 덜 출전했다. 그는 5월 3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2루 주자 2명과 1아웃 상황에서 라미로 멘도사를 구원하며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바로 윌 코르데로와 모 본에게 백투백 홈런을 허용했는데, 이는 그가 상대한 처음 두 타자였다. 한 이닝 뒤, 스콧 하테버그가 또 다른 홈런을 추가했다. 리오스는 1⅔ 이닝 동안 3실점을 허용했고, 모두 홈런으로 인한 실점이었다. 그는 콜럼버스로 돌아갔지만, 그해 말 양키스로 다시 복귀하여 9월 5일 7회 1아웃 상황에서 1루 주자를 두고 이토 히데키를 구원했다. 그는 연속 안타 3개를 허용하며 주자 1명을 불러들였고, 또 다른 주자도 득점했다. 8회 초에 연속 안타 2개를 허용한 후, 그는 그레이엄 로이드로 교체되었고, 끔찍한 메이저 리그 루키 시즌을 마감했다. – 2⅔이닝 동안 9안타 5실점 및 3명의 승계 주자가 득점했다.
1998년 3월, 뉴욕 양키스는 리오스를 방출했고, 그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의해 영입되었다. 그는 그 해 초 캔자스시티에서 5경기에 등판했지만, 부진했다. 그는 0승 1패, 평균자책점 6.14를 기록했으며, 25세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메이저 리그에서 던지지 못했다. 1998년 오마하 로열스에서는 6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63을 기록하며, 프로 경력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정기적으로 기용되었다.
1999년, 리오스는 다시 불펜으로 이동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는 오마하에서 10승 4패를 기록하며 팀 내 다승 공동 1위를 차지했고 4세이브를 올렸지만, 평균자책점은 6.07이었다.
2. 1. 뉴욕 양키스 시절
다니엘 리오스는 1993년 뉴욕 양키스와 아마추어 자유 계약을 맺고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GCL 양키스에서 데뷔하여 24경기 2승 1패, 평균자책점 3.52, 6세이브를 기록하며, 당시 선발 투수였던 마리아노 리베라가 잠시 활약했던 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1994년에는 그린스보로 배츠에서 37경기 3승 2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했고, 탬파 양키스에서 10.1이닝 동안 무자책점(총 2실점)을 기록하며 9경기에서 2세이브를 올렸다. 리오스의 통산 평균자책점 0.70은 그해 마이너 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기록 중 하나였다.1995년 탬파에서 평균자책점 2.00, 67.1이닝 72탈삼진, 53경기 출전(플로리다 주 리그 최다)을 기록하며 0승 4패, 24세이브를 올렸다. 1996년 노리치 내비게이터스에서 3승 1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2.09, 콜럼버스 클리퍼스에서 24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그를 양키스 팜 시스템에서 9위 유망주로 평가했다.
1997년 대부분을 콜럼버스에서 보냈고, 58경기에서 7승 4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3.08을 기록했다. 같은 해 5월 3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1⅔ 이닝 동안 3실점(모두 홈런)을 허용했다. 9월 5일 다시 양키스로 복귀했지만, 1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2실점 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2경기 출장, 승패 없이 5실점, 삼진 1개, 평균 자책 19.29를 기록하고 시즌 오프에 해고되었다.
2. 2.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
다니엘 리오스는 1997년 뉴욕 양키스에서 메이저 리그 선수로 데뷔하여 2경기에 출장, 승패 없이 5실점, 삼진 1개, 평균자책점 19.29를 기록했다. 이듬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다. 1998년 3월, 뉴욕 양키스는 리오스를 방출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의해 영입되었다. 캔자스시티에서 5경기에 등판하여 0승 1패, 평균자책점 6.14를 기록했다. 1998년 오마하 로열스에서는 6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63을 기록하며, 프로 경력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정기적으로 기용되었다.1999년, 다시 불펜으로 이동했지만, 오마하에서 10승 4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6.07을 기록했다.
3. KBO 리그 선수 시절
2002년 KBO 리그의 KIA 타이거즈에 영입되었다. 그는 팀이 첫 시즌에 2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14승(8선발승)[6] 5패,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그는 한국야구위원회에서 평균자책점 4위를 기록했다. 당시 에이스 최상덕이 오른쪽 어깨 회전근 이상으로 인해[6] 부진하자, 8월 2일 광주 SK전부터 선발로 보직 변경되었다.[7] 9월 28일 광주 LG전에서는 12회초 구원 등판하여 공 1개만 던진 뒤 3-3 동점이던 연장 12회말 홍세완의 끝내기 스퀴즈로 행운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8]
2003년에는 10승(모두 선발)[9] 13패로 부진했지만, 평균자책점 3.82로 KBO에서 9위를 기록했다. 한국 프로 야구 외국인 선수 최초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2004년에는 222⅔이닝 동안 17승(모두 선발)[10] 8패, 평균자책점 2.87를 기록하며, 박명환, 게리 라쓰, 배영수에 이어 평균자책점 4위를 기록했다. 그는 승리에서 게리 레스(두산 베어스) , 배영수(삼성 라이온즈)(1세이브)와 공동 다승왕 타이틀을 수상 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이닝 이터의 면모를 과시했다.'이오수'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기도 했다.
2005년에는 부진에 빠졌다. 당시 최악이었던 KIA 타이거즈의 경기력을 감안하더라도 전반기 6승 10패, 평균 자책 5.23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결국 리오스는 2005년 7월 10일 기아 타이거즈 내야수 김주호와 본인(리오스)을 주고 두산 베어스 좌완투수 전병두를 받는 2:1 조건으로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5년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리오스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되었다. 이적 후 13경기에 등판하여 9승 2패, 평균자책점 1.37을 기록하며 두산의 정규 리그 2위와 2005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11] 안정된 내야진과 넓은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그는 더욱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11] 또한 147탈삼진은 배영수와 함께 최다였으며,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승을 거두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2패를 기록했다. 전년에 이어 포스트 시즌에서의 약한 면모를 드러냈다.
2006년에는 12승 16패,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데뷔 이후 가장 많은 233이닝을 소화했다.[11] 한국 프로 야구 외국인 투수 최초로 5년차 시즌을 맞이했다. 이 해에는 12승 16패로 패전이 많았고, 팀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07년은 리오스에게 최고의 해였다. 32세의 나이에 이 오른손 투수는 시즌 중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통산 성적은 15승 12패, 평균자책점 3.51로 손민한과 김원형에 이어 KBO 평균자책점 3위를 기록했다. 그는 제구력 문제로 205와 3분의 1 이닝을 던지면서 147개의 볼넷을 기록했지만, 탈삼진에서도 배영수와 함께 KBO 선두(147개)를 기록했다. 6월 16일 문학 SK전에서는 KBO 리그 사상 최초로 1이닝 3타자 9구 삼진을 잡아내는 진기록을 세웠다.[11] 8월 30일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한국 프로 야구 외국인 선수 최초로 시즌 20승을 거두었다. 이후 2승을 더해 최종적으로 1990년 선동열 이후 17년 만에 22승을 기록했다. 선발 등판만으로 22승을 거둔 것은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9월 20일 수원 현대전에서는 7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1999년 정민태 이후 8년 만에 시즌 20승 고지를 밟았다.[11] 이후 2승을 추가하여 총 22승을 기록,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되었다.[11] 이는 역대 단일 시즌 선발 최다승 2위이자, 역대 정규 시즌 MVP 중 선발 최다승 기록이었다.[11][12] 또한, 그해 최다 완봉승(4완봉승)도 기록했다.[13] 10월 3일 현대전에서는, 아슬아슬한 노히트노런 투구로 두산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결정지었다. 22승 5패, 평균자책점 2.07의 좋은 성적이 평가되어, 시즌 MVP,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우수 승률, 골든글러브상 등 타이틀을 휩쓸었다. 그는 1999년 정민태 이후 KBO에서 처음으로 20승을 거둔 선수가 되었다(당시 KBO 일정은 126경기였으며, 20승 투수는 미국보다 드물었다). 그는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 해 20승을 거두었다(한국계 일본인 제외). 그는 2위를 차지한 류현진과 케니 레이번보다 5승을 더 거두었고, 그의 평균자책점 0.77은 2위인 채병룡보다 앞섰다. 그는 147개의 삼진을 잡아 류현진에 이어 KBO 2위를 기록하며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놓쳤다. 리오스의 22승은 1983년 장명부 이후 투수 최고 기록이었다. 리오스는 김시진(1983–1988), 선동열(1986–1991), 이강철(1989–1998), 정민철(1992–1999)에 이어 KBO 역사상 6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거둔 다섯 번째 투수가 되었다. 2007년 투수 부문 외국인 선수 최초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나,[11] 투구 모션 중 보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11] 10월 3일 잠실 현대 유니콘스전에서는 9회 1사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강귀태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아쉽게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11]
리오스는 2007 시즌을 90승 59패, 평균자책점 3.01, 807탈삼진으로 KBO 통산 기록을 마쳤다. 리오스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지배력을 이어갔다. 200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리오스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4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리오스는 2007년 KBO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오프시즌에 두산은 연봉 80만 달러의 계약을 제시했지만, 리오스는 보류했다. 잔류 협상은 결렬되었고, 두산의 보유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3. 1. KIA 타이거즈 시절 (2002-2005)
2002년 기아에 입단하여 대한민국 무대를 처음 밟았다.[5] 이해 그는 전반기에는 마무리, 후반기인 8월 이후에는 선발로 주로 활약하며 14승(8선발승) 5패, 13세이브, 평균자책 3.14라는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당시 에이스 최상덕이 오른쪽 어깨 회전근 이상으로 인해[6] 부진하자, 8월 2일 광주 SK전부터 선발로 보직 변경되었다.[7] 9월 28일 광주 LG전에서는 12회초 구원 등판하여 공 1개만 던진 뒤 3-3 동점이던 연장 12회말 홍세완의 끝내기 스퀴즈로 행운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8]2003년에는 10승(모두 선발)[9] 13패, 평균 자책 3.82로 부진했지만, 2004년에는 222⅔ 이닝 동안 17승(모두 선발)[10] 8패, 평균 자책 2.87의 빼어난 성적을 올리며 '이오수'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이닝 이터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한 시즌에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한 후유증 때문인지, 2005년에는 부진에 빠졌다. 당시 최악이었던 KIA 타이거즈의 경기력을 감안하더라도 전반기 6승 10패, 평균 자책 5.23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결국 리오스는 2005년 7월 10일 기아 타이거즈 내야수 김주호와 본인(리오스)을 주고 두산 베어스 좌완투수 전병두를 받는 2:1 조건으로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3. 2. 두산 베어스 시절 (2005-2007)
2005년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리오스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되었다. 이적 후 13경기에 등판하여 9승 2패, 평균자책점 1.37을 기록하며 두산의 정규 리그 2위와 2005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11] 안정된 내야진과 넓은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그는 더욱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11]2006년에는 12승 16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대한민국 데뷔 이후 가장 많은 233이닝을 소화했다.[11]
2007년은 리오스에게 최고의 해였다. 6월 16일 문학 SK전에서는 KBO 리그 사상 최초로 1이닝 3타자 9구 삼진을 잡아내는 진기록을 세웠다.[11] 9월 20일 수원 현대전에서는 7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1999년 정민태 이후 8년 만에 시즌 20승 고지를 밟았다.[11] 이후 2승을 추가하여 총 22승을 기록,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되었다.[11] 이는 역대 단일 시즌 선발 최다승 2위이자, 역대 정규 시즌 MVP 중 선발 최다승 기록이었다.[11][12] 또한, 그해 최다 완봉승(4완봉승)도 기록했다.[13] 2007년 투수 부문 외국인 선수 최초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나,[11] 투구 모션 중 보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11] 10월 3일 잠실 현대 유니콘스전에서는 9회 1사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강귀태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아쉽게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11]
리오스는 두산 베어스에서 등번호 45번, 27번을 달고 활약했다.
4. 일본 프로 야구 시절
2008년 6월, 야쿠르트 스왈로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뛰던 중, 리오스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스타노졸롤의 대사 물질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여 이후 1년간 일본 야구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1] 그는 다시는 프로 선수로 뛰지 않았다.
2008년 오픈전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는 한편, 후술하는 바와 같이 보크에 시달렸다. 4월 1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일본 진출 후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6월 28일 리오스의 금지 약물(하이드록시스타노졸롤) 사용이 발각되었다. 앞선 2명의 위반자(릭 가토슨(소프트뱅크) 및 루이스 곤잘레스(요미우리 자이언츠))와는 달리, 금지 약물(하이드록시스타노졸롤)임을 인지하고 사용했다. 같은 날부터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야쿠르트는 즉시 리오스와의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리오스는 "지난해 말 허리 치료를 위해 주사한 것이 양성 반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며, 이의 제기에 대해서는 변호사와 상의하여 결정하겠다고 밝혔다[3][4]。7월 14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4. 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2008)
2007년 12월 25일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1+1년 계약을 맺었다. 2008 시즌 연봉은 95만 달러였으며, 옵션 달성 시 다음 해 최대 275만 달러를 받는 조건이었다.[14]오픈전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4월 1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일본 진출 후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2승 7패로 부진했고, 2008년 5월 21일 실시된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 약물인 하이드록시스타노조롤(hydroxystanozolol) 복용 사실이 밝혀졌다.[15] 일본야구기구(NPB)는 6월 28일 리오스에게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고,[15] 야쿠르트 구단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센트럴 리그 연맹에 계약 해지를 요청함과 동시에 방출을 통보했다.[15] 리오스는 금지 약물(하이드록시스타노졸롤)임을 인지하고 사용하였으며, "지난해 말 허리 치료를 위해 주사한 것이 양성 반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3][4] 7월 14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4] 이후 대만 리그 진출 등을 모색했지만, 사실상 은퇴했다.[15]
5. 은퇴 이후
다니엘 리오스는 2000년 뉴어크 베어스로 이적하여 2승 3패,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했다. 같은 해 멕시칸 리그의 알고도네로스 데 우니온 라구나에서 6승 3패,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했다. 2001년에는 우니온 라구나에서 18승 5패, 평균자책점 2.98로 멕시칸 리그 평균자책점 9위를 기록했으며, 리그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 2010년에는 라미고 몽키스(La New 베어스)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불합격하여 은퇴했다.
6. 논란
다니엘 리오스는 2008년 6월 야쿠르트 스왈로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뛰던 중,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스타노졸롤의 대사 물질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였다.[1] 이로 인해 일본 야구 기구는 리오스에게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으며,[1]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도핑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6. 1. 도핑 파문
다니엘 리오스는 2008년 6월 야쿠르트 스왈로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 야구 (NPB)에서 뛰던 중,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스타노졸롤의 대사 물질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였다.[1] 이로 인해 일본 야구에서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1] 이후 프로 선수로 활동하지 않았다.6. 2. 보크 논란
7. 수상 경력
다니엘 리오스는 2007년 KBO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KBO에서 최우수 방어율 1회(2007년), 최다승 2회(2004년, 2007년), 최다 탈삼진 1회(2005년)를 기록했다. 또한 2007년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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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クルト・リオスが禁止薬物使用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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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최상덕 8월복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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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프로야구> 기아 선두 수성의 수호신, 리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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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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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완 승리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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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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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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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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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양현종-헥터, KBO 최초 2년 연속 선발 20승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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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2017-12-30
[12]
뉴스
이제는 기록…니퍼트, 리오스 넘어 MVP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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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스포츠
20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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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연도별 시즌 최다 완봉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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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위원회
2015-03-01
[14]
뉴스
'리오스 결국 일본 야쿠르트행…2년 380만 달러 파격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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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7-12-27
[15]
웹인용
'야쿠르트 리오스, 도핑 적발… 구단서 방출' 《연합뉴스》 2008, 6, 28
http://app.yonhapnew[...]
200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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